2013년 9월 25일 수요일

현대예술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간의 철학적 논쟁

이번 글을 통해서 현대예술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조가 매우 다르고 개념상으로 충돌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논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러한 논쟁의 내용을 살펴보고 진정으로 두 개념이 어떠한 것인지 파악을 해보도록 하려고 합니다. 먼저 두 사조의 개념을 파악하고, 발생하게 된 배경을 알아본 후, 두 개념이 서로 상반되게 된 이유를 보고 철학적인 논쟁에 대해 고찰해보겠습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
진행에 앞서 우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백과사전에서 정의내리고 있는 두 개념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 더니즘 : 근대주의 · 현재주의, 넓은 의미로는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에 반항,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이른바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예술상에서의 모더니즘은 20세기 초, 특히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 미래주의 · 다다이즘 · 형식주의(포멀리즘) 등의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을 가리켜 말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운동을 통틀어 모던아트라고 말하는 경향이 많으나 이것을 대국적인 견지에서 말한다면 19세기 예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주의에 대한 반항운동이며 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의 한 형태였다.[1]

모더니즘은 현대적이고, 도시적이며, 기존의 종교에만 빠져있던 인간의 무기력함을 타파하고, 이성과 도시적인 현대풍을 중요시한 사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더니즘은 이후 여러 현대적인 큰 격변들, 2차 세계대전, 흑인인권운동이 일어난 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후기 변화된 양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구체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 중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이다. 2차 세계대전 및 여성운동, 학생운동, 흑인 민권운동과 구조주의 이후에 일어난 해체현상의 영향을 받았다. 탈 중심 사고, 탈 이성적 사고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징으로 1960년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리오타르, 푸코, 보드리야르 등이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이다. 포스트모더니티(Postmodernity)는 포스트모더니즘과는 구분되는 용어로 사용되며, 포스트모더니즘이 발생한 시기의 사회·문화의 접변 현상만을 가리킨다. [2]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비해 다시 이성 중심주의에 회의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작가의 내적 표현적인 자유성을 극히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더니즘의 생성배경
모 더니즘이 발생된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모더니즘은 라틴어 모더누스(Modernus)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어떤 법칙, 척도, 방식, 형식, 양식에 의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지칭하는 모두스(Modus:영어의 Mode)를 어원으로 한 모더누스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용어들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지역의 상황을 포괄하는 특수한 용어로 대두되었습니다. 이 용어가 대두된 역사적 배경은 르 살롱을 이끌어온 프랑스의 아카데미즘이라 할 수 있겠는데, 프랑스 아카데미는 고대 플라톤에 이상을 둔 도덕적 이상을 궁정을 중심으로 당시 사대부들이 이를 숭상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3] 이에 대한 현실적인 반영으로서, 산업혁명의 여파로 인한 인구증가, 상업발달 초래, 계층 분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후기산업사회가 도래하자 전기산업사회의 가치체계들이 부적합하게 된 것처럼 이와 비슷한 현상이 10세기 후엽에 퍼져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살롱의 경향이 매우 이상적, 고전적, 보수적 시각이었던 데 반해 모더니즘은 새롭고, 미래지향적이며 뜨겁고 오늘의 인간을 보여주는, 새로운 것을 희구하는 세대, 계층, 생각, 아이디어의 분출로 표현이 되게됩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이에 나타난 아방가르드 사조19 세기 후엽의 사회에는 살롱 중심의 기득계층의 고대 지향적 낡은 관념에 대한 완전한 차단과 새로운 동경을 지칭하는 말로 무엇인가 모던한 삶, 살아 움직이는 삶을 갈망하여 불어권에서는 ‘예술이 좀 더 모던해야 한다’든지 ‘살아 움직여야 한다’든 지하는 용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즉 살롱 파들의 미술, 사고, 복식, 한문, 형식등 모든 태도에 있어 이것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주창하게 됩니다.
역사에서의 격동을 가져올 대사건인 프랑스 혁명에서 2월 혁명에 이르는 민주화 과정에서 1970년대에 인상파가 대두되고, 이후에 사회적 혁명이 배경이 되어 구세대들이 물러가고 신세대들이 새로운 미술과 사상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초기가 바로 19세기 후엽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과 배경 하에서 생성된 신생용어가 바로 모던이었던 것입니다. 유럽의 주도적 국가였던 프랑스를 필두로 휴머니티에 대한 새로운 규정과 새로운 가치 설정을 앞세운 전투적, 저돌적 색채의 사회학적 입장의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인상파 발생을 전후한 프랑스의 새로운 사회 사상가들의 등장은 사회 신흥 중상계층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미래에의 동경을 가지고 사회개혁 입장에 서면서 문학, 미술, 철학 등을 중심으로 한 혁신운동을 전투적으로 수행해 나아가게 됩니다. 이때 지금까지 군사용어로 사용되던 ‘아방가르드’란 용어가 사회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사상 속에서 새로 도래될 미래에 대한 예지로서 비전 제시 및 형성, 실천으로 나아가는 일체의 운동을 의미하는 용어로 등장합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급진주의가 강하게 대두되면서 뒤이어 문학, 미술 등 예술 모든 분야에 파급되어 전위의 문학, 전위의 미술등 19세기 후반 문예운동에 있어 아방가르드에 접목되었습니다. 모더니즘은 미래 신생사회에 대한 동경에 뜻을 두고 미래에 대한 동경에 뜻을 같이하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모더니즘은 역설적이게도 19C후반에 제안된 ‘모던’ 개념에 대하여 역행한 듯한 모더니즘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새로운 형태의 모더니즘은 이성, 자아, 자유에 중심한 중세적 낡은 사고와 가치체계에 대해 그 허위성을 폭로하는 운동을 전개 합니다. [3]

포스트모더니즘의 생성 배경학자들과 역사가들의 대부분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수많은 모더니즘의 중요한 개념에로의 반발과 차용으로 모더니즘을 확장 또는 대체시킨 사조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은 합리성, 객관성, 진보와 같은 이상에 많은 의미를 두었습니다.
Nietzsche는 1872년 에세이 『진리의 열정에 대하여』에서 인간의 기호의 세계의 우연성과 구성성에 대한 우화를 제공합니다. 그에 따르면 우주의 무수히 반짝이는 태양계의 한 구석 한 별에서 영리한 동물들이 ‘지식’을 발명하였는데, 그 지식은 곧 그들이 긍지를 느끼는 ‘세계사’의 미세한 세부에 대한 것이며, 이 별에서 몇 분되지 않아 그 영리한 동물들이 얼어붙어 죽게 됩니다. 니체는 또한 그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Cosima Wagner에서 준 같은 해에 『5권의 쓰여지지 않은 책에 대한 다섯 개의 서문』에서 감정을 소유하지 않은 악마가 이야기 하는 우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영리한 동물이 죽을 때 그들이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들 자신의 지식이 허위라는 것을 발견하고 죽어가면서 진리를 저주한다“라는 내용입니다.[4]
이 두 에세이에서 보듯이 우리는 전 작품에 나타나는 니체의 생각에서 지식과 진리는 다른 것이며, 인간과 같은 미완성한 존재는 진리보다는 지식이 허위인지 진짜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처럼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더라고 진리에 다가서기 위해 지식을 통하기보다 인간 스스로의 내적인 표현에 따르자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예술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실주의(Realism)와 모더니즘의 반발 작용으로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두 영역에서 서로 추구했던 점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2]
포 스트모더니즘이 철학에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모더니즘과 구조주의의 반발 작용이었습니다. 구조주의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그것이 포스트구조주의로 이어지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실제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당히 비슷한 개념입니다.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로 분류되는 철학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었습니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전
포 스트모더니즘의 신봉자들은 종종 포스트모더니즘이 특수한 경제 · 사회적 상황의 결과로써 도출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특수한 경제 · 사회적 상황’이란 후기자본주의와 방송 매체의 성장 등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상황들이 당시 사회를 새로운 역사적 시기로 진입하게 하였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신봉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상가와 저술가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모더니즘의 확장일 뿐이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나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2]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리 오타르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지식의 정보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선진 정보화 사회, 후기 산업사회에서 메타이야기는 더 이상 신뢰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그에 따르면 개별적인 사유 및 행위의 정당화는 거대 혹은 메타 이야기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리오타르는 사상의 변천사를 주목하면서 이런 정당화 이야기의 모형을 기독교적 이야기, 계몽의 이야기, 사변적 이야기, 마르크스적 이야기, 자본주의적 이야기로 세분합니다. 이는 중세 기독교적 이야기는 사랑을 통해 아담이 저지른 원죄로부터의 해방을, 근세 계몽의 이야기는 지식과 평등주의에 의해 무지와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헤겔류의 사변적 이야기는 구체적인 것의 변증법에 의해 보편적 이념의 실현을, 마르크스적 이야기는 노동의 사회화를 통해 부르주아지의 착취와 소외로부터의 해방을, 자본주의적 이야기는 기술 산업적 발전을 통해 경제적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각각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거대 이야기들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것은 ‘보편적 자유와 전 인류의 해방’이며, 이것이 바로 ‘모던의 기획’(projet moderne)이라고 리오타르는 주장합니다.[5]

리 오타르에 따르면, 이런 해방과 계몽의 이야기들은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제도·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행, 입법, 윤리, 사유양식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신화와는 달리 메타이야기들은 일어날 미래, 즉 실현될 이념 속에서 그 정당성을 찾습니다. 자유, 계몽, 사회주의, 전반적인 부유 화와 같은 이념들이 정당화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모든 인간 현실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오타르는 그것에 의해 모더니티에게 특징적인 양식, 즉 하버마스가 말한 목표를 지향하는 의지를 의미하는 기획이 부여된다고 하면서, 보편성의 실현이라는 모던의 기획은 포기되거나 망각된 것이 아니라 파멸되고 청산되었다고 주장합니다.[6]
메타이야기들 혹은 메타주체가 탈정당화의 위기에 처한 포스트 모던적 상황 속에서 일상적인 삶의 직물을 짜는 것은 이제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이라고 리오타르는 생각합니다.[7]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충돌20 세기 후반의 시대정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화를 통한 전반적인 예술의 흐름이었습니다. 신 조류였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그 이전의 모더니즘은 서로 상반된 스타일로 인하여 많은 충돌과 논쟁을 야기 하였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용어 자체가 역사학적 구분에서의 근현대에 스쳐간 수많은 것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학자, 지식인, 역사가 사이에서 그 정의를 두고 극한 논쟁이 일고 있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포스트 모던적 생각이 철학, 예술, 비판 이론, 문학, 건축, 디자인, 마케팅/비즈니스, 역사해석,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습니다.[8]
포스트모더 니즘은 일률적인 것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강조하였으며, 이성을 중시하며 등장한 모더니즘이 추구한 정치적 해방과 철학적 사변도 하나의 이야기(거대 서사 혹은 큰 이야기)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칸트가 순수 이성이 만들어낸 산물이라 했던 이념의 실현을 불가능하다고 주장함으로서 정치철학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2]
19세기에 장밋빛 삶을 약속한 해방과 진보라는 계몽의 이념이 20세기를 마감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은 간단하게 대답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존의 모더니스트들은 모던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이제 모던의 이상은 그 효력을 상실했으며, 그래서 모던은 ‘포기’가 아니라 ‘청산’되어야 할 유물이라고 반박합니다. 모더니스트들은 사회적인 실천을 등한시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신 보수주의자 또는 신비합리주의자라고 매도하고 있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이런 비판을 부정하면서 오히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헤겔적인 통일성과 전체성을 지향하는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합니다. 그렇다면 1970년대부터 가열된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논쟁 혹은 모더니스트와 포스트모더니스트 간의 논쟁은 ‘고대인과 근대인의 논쟁’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가? 포스트모던은 모던이라는 거인의 어께위에 앉아있는 난장이에 불과한가? 파스칼과 베이컨이 그랬듯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스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가? 근대가 고대 및 중세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듯이 포스트모던의 이상은 단지 모던으로부터의 해방인가? 모던과 포스트모던은 합치될 수 없는 끝없는 평행선을 서로 고집하고 있는 것인가?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왜 모던이라는 단어 앞에 ‘포스트’라는 접두사를 첨가했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모던에 대한 어떤 불만을 해소하고 있는가? 포스트모더니즘은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사조에 불과한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우리는 두 사조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검토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1980년 하버마스가 “모던-미완의 기획”이라는 아도르노 상 수상강연문에서 포스트모더니티를 비판하자, 리오타르는 1982년 “질문에 대한 답변: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논쟁의 불이 붙게 되었습니다.[9]

리 오타르는 1987년 한 인터뷰『포스트 모던적 조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전개된 나의 입장에 대한 공격과 비탄은 사실상 일반화하고 총체화되는 이성개념의 일부분이다. 나는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성적인 것으로 보이는 다음의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그들을 비판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이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나는 칸트의 모델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적으로 그와 일치하고 있고, 더 나아가 상당할 정도로 비트겐슈타인의 의견과도 일치하고 있다”[10]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는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을 대략적으로 감지 할 수 있습니다. 리오타르에 따르면, 모던이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메타이야기에 호소하는 시대정신이지만, 그 반면 포스트모던은 메타이야기를 불신하는 사유양식이라는 것입니다.[10]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포 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으로는 ‘모더니즘이 대표하는 이성이 좀 더 시대를 이끌어 나가야하는가? 이성이 도구로 변질 되어버린 시점에 굳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반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의 사상이며 모더니즘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무시한, 일종의 시대착오로 비판받을 만한 것입니다.[2]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간의 논쟁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성격의 모호성과 여러 모호한 의미적 중의성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고, 일부 논자들의 정돈되지 못한 시각 때문에 혼란이 초래되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철학은 허공 속에서 돌연히 탄생하지는 않습니다. 포스트모던 철학이 어떤 시대적 특징의 반영이며 표현인가가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바꿔 말하면 학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전개된 포스트모던 논쟁이 이론적으로 정립이 힘들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포스트모던 논쟁이 실전적인 효과를 가져왔는가? 어떠한 현실적 상황이 우리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것이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생산했는가? 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2]

포 스트모더니즘을 반대하는 하버마스의 경우에는 기존의 것과 차이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사회적 실천의 대안이 결여된 신보수주의자라고 매도하고, 상호 이해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인식, 실천, 미학의 영역 사이의 의사소통 가능성을 추구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인류의 진정한 해방과 사회적 진부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9] 다시 말해서 하버마스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논의는 논제가 주어지지 않은 채로 메타 이야기가 사라진 사회에서 보편주의와 충돌이 일어나지 않겠는가라고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9]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다른 시각
리 오타르는 아주 분명하게 포스트모던이 모던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종말이 아니라 지속적인 탄생이라는 것입니다.[9]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 포스트를 전향, 즉 이전의 것 다음의 새로운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모던적인 사유방식이라고 리오타르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던이라는 개념자체가 전통과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과 사유방식을 지향하는 것이 가능하고 필연적이라는 원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오타르는 전통과의 단절이 오히려 과거를 망각하고 억압하는 방식이 아닌지 혹은 과거를 넘어서기 보다는 단지 반복하는 방식이 아닌지 하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포스트의 의미는 컴백, 피드백, 플래시백의 운동, 즉 반복 운동이 아니라 분석, 상기, 재생, 변형에 있어 원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10]
그러므로 리오타르에 있어 포스트의 의미는 모던과의 단절이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모던이 추구한 것을 상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포스트모던은 모던을 ‘다시 쓰는’ 것입니다. 즉, “모던도 이른바 포스트모던도 어떤 역사적인 요소에 따라 분명하게 확인되거나 규정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포스트모던이 모던 이후에 오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포스트모던은 모던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던이라는 시간성은 그 자체 속에 자신과는 다른 상태로 넘어가려고 하는 역동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10] 그래서 포스트모던에서 포스트는 '이후‘가 아니라 ’다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작업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가시화시키고, 새로운 관념을 창안해내고, 새로운 언술규칙을 발견해내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수반하는 기쁨을 초래하는 숭고의 작업이며, 이런 작업을 과감히 수행하는 자는 포스트모더니스트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9]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렇듯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포스트모더니즘이 예술에 끼친 영향도 컸습니다. 예를 들어, 미술, 음악의 대중화와 미술에서 등장한 팝아트와 비디오아트, 음악에서 등장한 랩과 같은 장르의 발생을 들 수 있고, 이러한 장르는 기존의 예술과는 매우 다르게 개성이 넘치고 자율적이며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에서는 장르의 벽이 느슨해지고 전지적 시점보다는 다른 시점을 채택함으로써 현실감을 증대시키고 독자의 상상력을 중시하게 됩니다. 소설 따위의 마지막에 약간의 여운을 남겨두고 독자를 생각하게끔 하는 것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작가 위주의 문학에서 벗어나 독자가 능동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2]

마무리
이상의 논의에서 두 대립적인 시각사이에 ‘상호이해의 한계’가 있을 지라도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반 모더니즘이나 모더니즘의 이후로 파악될 수 없습니다. 둘 다 인간이 억압과 지배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살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해방 이념을 수용하고 있는 셈입니다.[9]
우리가 생각하는 모던은 무수히 많은 의미를 뜻하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 문화로 퍼져있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모던함이라는 것이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러한 모던의 새로운 재 정의이며 가치를 가지려는 인간의 사유과정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철학적으로 구시대의 발명품과 차이가 있을지언정 부단히 노력하려는 인간의 사유 활동의 하나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중요한 인간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조
1. 두산백과사전『모더니즘』 두산동아 vol 12, 1983, p70
2. 위키디피아『포스트모더니즘』
3. 김복영.『한국현대 미술과 모더니즘』원구식 역, 북악청년미술아카데미, 1992
4. 김영민.『다시 본 포스트모더니즘:Nietzsche, Heidegger, Derrida』한국영어영문학회 제39권 3호. 1993
5. 리오타르.『지식인의 종언』이현복 역. 문예출판사. 1993. 93쪽 참조
6. 엄정식,『현대철학 특강』철학과현실사. 1999
7. 이현복. “리오타르: 차이의 철학과 해방의 미학” http://blog.aladdin.co.kr/780426173/2572274. 2009
8. 윤평중. “왜 지금 여기서 포스트 모던 논쟁인가?”『모던과 포스트모던의 논쟁』철학연구회. 1993
9. 이현복. “거인의 어께위에 앉아 있는 난장이?”『모던과 포스트모던의 논쟁』철학연구회. 1993
10. 리오타르.『포스트모던적 조건』이현복 옮김. 서광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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