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5일 수요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이 작품은 낙원이 아니며 행복도 없는 ‘낙원구 행복동’을 배경으로 소외 계층을 대표하는 난장이 일가의 삶을 통해 도시 재개발 뒤에 숨은 소시민의 아픔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인 난장이네 가족은 재개발지역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5명으로 구성된 가족이며, 작품의 전개는 3명의 자식의 시각에서 각자의 관점에서 가족이 처한 현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큰 아들 영수가 주요 서술자로 등장하며, 내용의 주요 핵심 사건인 집의 철거 통지서를 받는 내용과 가족들의 삶의 역사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수는 다른 어린 동생들에 비해 정확하게 자기 가족의 가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선조부터 대대로 내려온 뿌리 깊은 가난과 그 가난 때문에 자신도 가난을 되 물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의 주요 화자로 다루었던 둘째 영호는 영수에 비해 좀 더 객관적으로 가난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면에는 자신의 가족이 처한 현실이 왜 그런지 형에 비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곁에서 바라보며 자신의 가족의 가난에 대한 슬픔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를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동을 자신의 눈으로 묘사함으로서 느끼는 슬픔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의 영희는 여자의 몸으로서 가족을 위해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투기업자로부터 집의 소유권을 찾아오게 됩니다. 비합리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가난의 대를 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죄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결국은 꿈을 짓밝히게 된 아버지의 자살에 오열하는 영희의 모습에 오히려 더 측은하게 만들게 하는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장마다 세 명의 화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 가족이 집을 잃게 되는 이야기를 소설 전반에 걸쳐 서술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개를 통해 현실에서 고통을 받는 위치에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과정에서 저는 무척이나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화자들의 고통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면서 진정으로 소설의 제목은 주인공들이 꿈꾸는 이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미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난장이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는 꿈이 있습니다. 남에게 천시를 받는 난장이로서,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으며, 몸도 많이 쇠약하여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지만, 늘 책을 읽으며 우주로 쇠공을 타고 우주로 날아가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듣고 무시하지만 그는 오히려 사람은 꿈을 가져야 한다고 야단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쇠공이야기는 그의 못다 이룬 꿈인 써커스의 주인공을 꿈꾸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입으로 항상 말하는 우주는 멋진 관객들로 둘러싸인 써커스 장이며, 가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반면 가족들은 그러한 이상에 반대합니다. 이상에 집착했던 아버지는 결국 집을 잃자 곧 자살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꿈을 꾸는 가난한 자에게 결국 꿈을 빼앗은 건 꿈이 없는 자들의 포기이기도 하고, 근본적으로는 그 꿈을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한 탐욕이었던 것입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소시민들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소외계층의 아픔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저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몇 구절 있었는데, 특히 ‘천국에 사는 사람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난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서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작품의 도입부에 나오는 영수의 생각으로, 가난한 자의 서러움을 모르는 자는 그들의 서러움을 모르며, 가난한 자들은 항상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산다는 것을 아주 잘 표현한 구절입니다. 이는 도시빈민의 궁핍한 생활,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에 찬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현실적 패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난 문제는 우리사회가 당면한 엄연한 현실적 문제이자 풀어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를 난장이라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라고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에 너무나도 처량하고 가엽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이 겨우 난장이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고통 받고 학대받아야 하는가? 전 그러한 현실을 실감나게 그들의 마음과 눈으로 표현한 이 작품의 묘사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작품은 있는 자와 없는 자간의 괴리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너무나 엄격하게 나뉘어져 있었습니다.’란 글귀에서와 같이 얼마나 이 세상은 불공평한지 그리고 배운 자들은 곧 부자들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전 어렸을 때 나는 마냥 사회가 공평하다고 보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옛날이야기에서와 같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불쌍하지만 자기가 자초한 일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저 나름대로 세상을 살면서 저 스스로도 부자는 아니었기에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 알 수 있었습니다. 영수의 말대로 ‘세상은 학교 안에서 배운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란 구절과 같이 TV에서나 보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은 엄연한 현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가난은 그들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부모가, 또 그들의 부모의 부모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자들은 그들의 행복을 빼앗아 대신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세상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저에게 준 충격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이었지만 한 가지 좌우명을 가슴 속 깊이 아로새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내가 받은 만큼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자!’ 라고..
사실 이 작품에 담겨 있는 소외된 도시 근로자의 여러 문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입니다. 즉, 생존에 필요한 최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열악한 작업환경, 고용자로부터 강요되는 부당한 노동행위, 노동조합에의 탄압, 폭력으로 저항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마음, 그리고 가진 자들의 위선과 사치, 그들의 교묘한 억압방법 등 산업 사회의 부정적 측면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은 빈민가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하는 대도시 서울에서도 재개발 후 자신의 집터를 헐값에 팔리는 것을 반대하는 입주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많은 목숨을 잃은 뉴스를 여전히 접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이 소설의 주인공이 다른 점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들이 처한 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점점 더욱 개인적인 삶을 중요시하는 도시사회에서, 남이 무엇을 하던 신경 안 쓰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전 사회보다 더 각박해진 것이 현실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 세상 그리고 앞으로도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린 그 소외계층에 대해 한번 쯤 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철거민들이 경찰 탄압에 반대하여 저항을 하다가 큰 불로 목숨을 잃었고, 이들의 분향소를 찾은 이 작품의 작가 조세희 씨께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지 30년이 지났는데 같은 일이 반복이 되고 있어, 그런데 그 방법은 더 야만적이고 더 미개해지고 더 끔찍해진 것 같아.” “소설 속의 난장이는 강제철거를 당한 후 삶의 희망을 빼앗긴 채 굴뚝 속에서 자살을 했고 2009년 용산의 세입자들은 옥상에서 철거에 저항 하다 불에 타죽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못난 난장이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을 보지 못하고 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시금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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